중국 베이징 시내에서 며칠 전 중요한 모임이 있었다.
그런데 참석자 30명 중 20명이 지각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간선도로 구조물 위에서 농민 1명이 목숨을 건 시위를 벌여 교통체증이 심화된 때문이다.
중국 도시빈민과 농민들이 임금체불과 생활고를 호소하며 길거리로 뛰쳐나온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8일에는 옌변조선족자치정부 앞에서도 시위대 50여 명이 임금체불을 성토하고 있었다.
공안부가 집계한 시위만 연간 7만건을 웃돌고 있으니 고도성장의 뒤안길이 얼마나 어두운지 알 만하다.
중국 지도자들이 이런 분위기를 모를 리 없다.
그래서 이달 5일 베이징에서 개막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최대 슬로건은 `조화사회 건설`이다.
"빈부격차 해소, 환경보호, 사회보장 확충에 전력하겠다"는 다짐이 노랫말처럼 따라다닌다.
총리ㆍ부총리의 업무보고만 들어봐도 성장우선론이 고개 숙인 변화는 뚜렷하다.
원자바오 총리는 "에너지ㆍ오염물질 감축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며 머리를 숙였다.
우이 부총리는 "의료비가 높아진 것을 사과한다"며 고개를 떨궜다.
이런 전인대에서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보호하는 `물권법`이 주목받고 있다.
2004년 초안 제출 후 중국을 떠들썩하게 만들 정도로 체제 논쟁을 불러온 법안이다.
전인대 상무위원회에 제출된 법안은 보통 3심 이전에 통과한다.
그런데 이 법률안은 인민정부 수립 후 처음으로 7심까지 거치는 진통을 겪었다.
지난해 전인대에서도 전체회의에 상정될예정이었지만 결국 보류된 법안이다.
그러던 사유재산 보호법이 이번에는 이변만 없다면 16일 통과될 예정이다.
전인대 대변인이 개막 전부터 "헌법정신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분위기를 띄웠고 법안 상정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이쯤되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있을 법하다.
"조화사회 건설을 주장하는 전인대가 사유재산을 받아들여 빈부격차를 인정하고 부자들을 보호하겠다니…."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은 중국 부유층들이 2005년 말 보인 행동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전인대에서 물권법이 통과될 것으로 예상되던 이때 중국 부유층들은 아들ㆍ손자에게 재산을 물려주느라 야단법석을 피웠다.
`와와(娃娃)업주(갓난아기 사업가)`라는 신조어가 유행했을 정도다.
중국엔 상속세와 재산세가 없다.
사유재산을 인정한 적이 없으니 상속ㆍ재산세를 거둘 명분도 미약했을 듯하다.
전인대에서 상속ㆍ재산세와 물권법을 직접 연관지어 설명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그럼에도 연관성을 유추하기는 어렵지 않다.
물권법을 제정하려는 논쟁은 이미 13년 전 시작됐다.
상속세 도입 논란이 촉발된 시기도 바로 그 즈음이다.
요즘 물권법 심의과정을 소개하는 신문 한켠으로 눈을 돌려도 흥미롭다.
주택보유세를 도입하겠다는 정부 계획이 꾸준히 보도된다.
중국에서 사유재산제는 2600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춘추시대 노나라가 기원전 594년 `정전제(토지공유제)`를 해체하고 개별 경작지별로 세금을 부과한 것이 그 기원이다.
그 후 숱한 왕조와 이민족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떠오르고 사라졌어도 사유재산제는 변함없이 경제활동과 조세제도의 근간을 이뤄왔다.
유구한 역사의 교훈을 외면하고 사회주의 실험에 나섰던 중화인민공화국이 58년 만에 사유재산을 법으로 공식 인정하려 한다.
중국 공산당은 60년대 초반 `대약진운동` 실패로 수백만 명을 굶어죽게 만들었다.
그 후 70년대 말 잉태시킨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서구 선진국보다 더 큰 빈부격차를 빚어냈다.
사유재산을 외면하면서 중국이 지불한 비용은 이처럼 엄청나다.
이제라도 "부자들을 먼저 인정하고 보호해야만 조화사회도 그리고 부자들에게 더 큰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일도 가능해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받아들였으니 다행스런 일이다.
[베이징 = 최경선 특파원 choiks@mk.co.kr]
< Copyright ⓒ 매일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