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를 이끌고 있는 기업인이나 금융인들은 한국 금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노동집약적 굴뚝산업, 미완성, 복지부동, 온실 속 화초, 우물 안 개구리, 초보운전자, 줄기 빠진 갈대, 형광등, 풍전등화… .
얼마 전 국내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한국 금융은 ( )이다`라는 설문을 했을 때 빈칸에 들어간 말들이다.
대다수 응답자들, 금융 CEO 스스로 인정하듯 한국 금융산업은 내수산업에 머물러 있다.
이곳저곳 꽉 막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처지다.
한국의 금융 CEO들은 외환위기가 준 충격에 가위눌려 있다.
`리스크는 곧 위험`이라는 인식에 파묻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제조업 부문과 비교할 때 치열한 기업가정신이 미흡한 편이다.
폐쇄적 인맥과 특정 파벌이 실력과 능력을 짓누르는 구태가 여전하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금융산업을 주도해야 할 은행은 안방싸움 중이다.
10년, 20년 전에도 IB(투자은행) 대표주자가 되겠다는 증권회사 CEO들이 많았다.
하지만 국내 기업끼리 사고 파는 대우건설 LG카드 등 빅딜은 외국계 IB들이 좌지우지하고 있다.
유럽 등에서는 여러 나라 거래소들이 통합했지만 증권선물거래소는 독야청청이다.
코스닥 기업을 포함해 1600여 상장기업 중 외국 회사는 전무하다.
오래 전부터 외국 기업을 유치하겠다고 했지만 중국 기업 1곳이 상장을 준비중일 뿐이다.
싱가포르 거래소에는 해외 기업이 247개나 올라 있다.
국민연금은 200조원 넘게 자금을 끌어들였지만 자금 운용을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5~6년 전부터 전문가들이 주식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운용위원회에 막혔다.
국민들의 노후를 책임져야 한다는 점에서 안정성이 핵심이지만 자산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 걸맞은 포트폴리오 조정이 불가피하다.
한때 국민연금이 주식을 사면 외국인들이 빠져나갈 기회만 준다고 했다.
출범 초부터 동북아 금융허브를 주창해 온 참여정부에서는 무엇이 이뤄졌나. `태산명동서일필`이라 하더니 동북아 금융허브의 쥐꼬리가 바로 한국투자공사(KIC)라는 자조적인 평가가 있다.
200억달러를 맡은 투자공사는 3년째 들어선 올해 20억달러를 투자했다.
그나마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의 주도권 다툼 속에 우왕좌왕하고 있다.
KIC의 모델이 됐던 싱가포르의 테마섹은 3000억달러 가까이 투자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 아시아권 은행을 사들이거나 지분을 매입해 높은 수익을 올렸다.
중국은 외환보유액 중 최대 4000억달러를 운용하기 위해 중국판 테마섹이라는 렌후이공사를 곧 출범시킨다.
기업공개로 시가총액 150조원으로 커진 중국공상은행은 인도네시아 뱅크할림을 인수했고, 중국민생은행은 홍콩 소매금융에 진출하려 하고 있다.
중국을 보는 시각도 달라져야 한다.
싼 임금을 따먹던 국내 중소 제조업체의 현지공장은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금융산업 측면에서 보면 중국 시장은 막 열리고 있다.
중고가 상품 시장 성장과 맞춰 금융을 비롯한 컨설팅 회계 등 지식서비스 산업에 새로운 기회가 오고 있다.
한국 증시 개방 이후 외국인 투자자들은 10년 이상 이렇다 할 수익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올림픽과 외환위기, 월드컵을 지나면서야 고수익을 올렸다.
요즘 국내 금융회사들이 움직이고 있다.
부산저축은행이 컨소시엄을 만들어 캄보디아에 은행을 설립한다고 한다.
금융의 `얼리어답터`인 셈이다.
국민은행은 인도네시아 BII은행 인수를 타진하고 있다.
당초 국민은행이 최대주주로 참여하려 했던 설악컨소시엄을 사들이려는 시도다.
매일경제는 21일 국민보고대회에서 `금융한국을 만듭시다`라는 화두를 던진다.
부자나라 한국을 만들기 위해 금융산업이 강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제 자신감 있는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금융 CEO들이 규제와 국내외 환경을 탓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실력으로 금융강자가 되겠다는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정부나 금융 계열사를 둔 기업 총수는 금융 CEO들이 중장기 전략을 과감하게 실행할 수 있도록 책임과 권한을 위임하고 자율경영을 보장했으면 한다.
설문조사에서 소수이지만 한국 금융을 새싹, 첨병, 청년기, 전환기라고 답변한 이들도 있었다.
그만큼 부푼 희망도 담겨 있다.
금융의 글로벌 플레이어와 금융권의 스타 탄생을 기다린다.
[조경엽 금융부장]
< Copyright ⓒ 매일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