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가 9개월쯤 남았다.
그러나 대부분 관심은 어느 후보가 앞서 가고, 어느 후보가 새로 등장하느냐에만 쏠려 있을 뿐 지금 대한민국에 어떤 대통령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가 별로 없다.
정치 관전자들은 다르겠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 볼 때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보다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국가가 발전할 것인가가 먼저 논의되어야 하고,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확실히 밝혀야 한다.
인기가 오르기만 기다리다가 출마해서는 대통령의 자격이 없다.
한나라당 이명박ㆍ박근혜 씨야 출마가 기정사실화됐으니 이제는 분명히 비전과 정책을 밝혀야 할 것이고, 탈당한 손학규 씨는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기에 탈당하면서까지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지 밝혀야 도리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더 높은 지지를 얻기도 어렵다.
서울대 교수인 정운찬 씨도 학원을 뛰쳐나와 대통령을 할 이유가 무엇인지 이야기를 해야 한다.
정동영 씨를 포함한 여권 후보들도 언론의 지지율 조사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분명한 자신의 국정 비전을 드러내놓고 대권에 도전했으면 한다.
올해 대선에서 국민은 2002년 대선과 달리 무조건 인물만을 보고 찍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그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좀 더 자세히 뜯어보고 투표할 것이다.
후보시절에는 표를 얻기 위해 유권자를 자극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다가 집권 후에는 다른 정책을 펴는 예를 보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꿈꾸는 것은 자유지만 시대의 요구에 그리 적합하지 않다면 대통령이 아닌 다른 자리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국가를 위해 또 자신을 위해 올바른 선택일 것이다.
대통령의 역할은 시대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한다.
다소 거친 평가가 될지 몰라도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를 가난에서 헤어나게 했고, 전두환 대통령은 장기집권의 고리를 끊었으며, 노태우 대통령은 권위주의 통치에서 벗어나게 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군부의 정치개입을 차단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국가부도 위기를 탈출하고 남북화해 시대를 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자금의 억센 고리를 끊었으며 지배계층의 탈(脫)기득권을 시도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잘못한 일도 많지만 다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이 나라를 이끌 지도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필자는 '창조적 파괴'를 통해 한국을 선진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는 인물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경제를 잘 할 수 있는 인물도 좋고, 정치를 잘 하는 인물도 좋다.
평화세력, 개혁세력, 미래세력도 좋다.
하지만 어느 한 분야만을 특별히 잘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경제, 사회, 교육, 노동 등 각 분야에서 선진국 진입에 걸림돌이 되는 제도와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칠수 있는 인물, 그리고 한국인의 강점을 십분 살려 개방화ㆍ세계화의 길로 인도하는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다.
한국이 지금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되어 있다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말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10년 전인 1997년 매일경제-부즈앨런 보고서에서 나온 '넛 크래커(호두까기)론'과 똑 같다.
실은 그때 예상한 것보다 더 심각하게 한국은 고립적 상황에 처해 있다.
생산 측면에서 한국은 연간 10%대 고속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중국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기술 측면에서 한국은 일본의 먼 발치에 있다.
산자부 조사에 따르면 세계 900대 핵심기술 중 일본이 30%를 보유한 반면 한국은 1%에 불과하다(미국은 무려 45%다). 이대로는 안 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아시아의 수출챔피언인 한국이 중국의 저가공세와 일본의 첨단기술 사이에 끼어 비틀거리는 몽유병 환자와 같다고 썼다.
외국인 눈에도 분명히 그렇게 보이는 모양이다.
그러나 FT 역시 지적했지만 한국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 놓여 있다는 점은 강점이 될 수 있다.
한국이 중ㆍ일 양국 사이에 낀 존재가 아니라 양국을 날개로 해서 태평양으로 뻗어나가는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조만간 한반도에 큰 판이 열릴 것이다.
핵문제가 해결되고 북한이 미국과 수교하게 되면 한반도는 중국과 일본의 가교 구실은 물론 러시아와 유럽으로 통하는 동북아의 핵심 거점이 될 수 있다.
지정학상 부러울 것이 없다.
이런 나라를 이끌어 갈 현명한 대통령을 꼭 보고 싶다.
[한명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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