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사법고시생 동갑내기(사실은 나 보다 한살 적음)를 객장에서 만났다
머리는 무진장이 좋았지만 과락으로 고배... 또 고배...
그에 비하면 내 머리는 깡통이었다
집에만 있자니 선생을 하는 마누라 눈치도 보이고
공부에 지쳐서 돈이나 좀 벌어 볼까 하고 객장엘 나왔단다
(이때는 홈넷이 활성화 되기 직전 임)
과부사정 홀애비가 잘 알듯이
주식하는 사람의 고독은 서로가 잘 알기에
곧 죽이 맞았다
그는 마누라 덕에 먹고 사는 사법고시 낙방 빈털털이
나는 사업을 정리한 후라 돈이 꽤있었다
당연히 노닥거리 맥주 값은 내가 전부 부담하였다
만나서 노닥거리기 시작하면
그는 무슨 할말이 그리도 많은지 주식 스토리를 줄줄줄 토해냈지만
나는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욕시 머리 좋은 수재는 달랐다
그는 분석의 천재였다
며칠 이면 노트 한개 씩이 채워질 정도였으니까
하루가 다르게 기법을 만들어 내서
도전에 도전을 계속했다
그런데 번번히 깨지고 또 깨졌다
그는 돈이 없으니 맏형에게서 조금 씩 가져다 쓴 돈이
8개월 쯤 지나니 어느새 5천을 까먹었다
(빌린 돈이 아니고 잘해 보라며 준 돈임)
그새 시중의 주식책도 서너 권 독파했다
나는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단순 그 자체였다
초보라서 주식을 모르니
연관성 있는 증권주에 관심이 갔다
그래서 찍은 것이
현재증권, 삼성증권,대신증권
그런데 주신은 나의 편이 아니었다
나는 하필 대신증권에 몰빵을 했는데
현대와 삼성이 전광판에서 앞 서거니 뒤 서거니
폭등세를 연출 할 때에도
대신증권은 바지에 똥 뭍은 놈 처럼 어기적 어기적 거리기만 했다
(주식은 많이 올랐더라도 그 놈이 또 간다. 가던 놈이 또 간다
첨에 뒤처진 놈은 나중에도 뒤처진다
선도주 파악이 이처럼 중요하다)
몇 개월을 그러다가 별 재미를 보지 못하고
다행히
엘지전자와 현대차 우선주로 바꿔타서 그 동안의 시간손해를 보충했다
1년이 지나자
그는 약 8천을 까 먹었다
머리 좋은 탓으로
수도 없는 분석과
수도 없는 기법개발을 통한 맹렬한 실험정신의 결과였다
그가 밤잠을 못 자며
죽기로 주식 고시생이 되어 분석과 기법연구로 "학구열을 불태울때에"
나는 그와 자주 가서 노닥거리던 술집 마담과 눈이 맞아서
줄창 객장을 지키기 보다는 수시로 빠져 나와서 "뼈와 살을 불태웠다"
(나 보다 5살 어렸음)
그 당시에 내 주변의 주식꾼들이 그와 나의 주식성적을 비교하면서
두고 쓰는 말이 있었다
"고시 머리와 주식 머리는 달라~"
글쎄~
머리 좋은 그 보다
머리 나쁜 내가 그 당시에는 주식성적이 더 좋았던 이유는 뭘까?
8천을 털어 먹은 얼마 후에
그는 다시 공부를 한다며 서울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객장에서 뜸해졌고
얼마 후 나도 객장을 다른 도시로 옮기면서
그와는 지금까지 영영 이별이었다
모르겠다
그가 8천이라는 수업료 이후에
얼마나 더 나은 주식 성적을 내고 있는 지는 ...
나는 지금도
여타의 분석이나 기법을 죽어도 믿으려 들지 않는다
예전에는 참고라도 할려고 했지만
이제는 듣기 조차 싫다
주식 10년차
주식하면서
몸과 마음 버릴 정도로 골치 아플 거면
술과 담배에 쩔어서 살 것 이면
차라리 주식하지 말자 라는 결론이다
강산에의 노래 처럼
저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 처럼이 아니라
시간이 라는 강물에
두둥실 떠가는 돛단배 처럼 한가로히 나를 내 맡기고 싶어라~
그 때의 주식 고시생 그는 지금 어찌 하고 있을까?
결국 탁월한 분석과 기법의 개발에 성공하여
주식법원 법원장 자리에라도 올랐을까?
나는 겨우 현재 주식법원 수위실에 수위장이다
밥은 굶지 않고 있으니까
마음은 편하니까
결코 주식 실패자는 아닐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최고 주식 부자는 아닌지 모르겠다
나 보다 주식 후배( 실력이 아니라 년수로 후배) 들께
감히 권해 드리고 싶다
죽기 살기로 주식할 거면 차라리 다른 일에 투자를 하라고 ...
죽기 살기로 해도
제일 성공 확률이 낮은 것이 바로 주식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주식 할 거면
죽기 살기로 하지말고 그냥 적당하게 마음편하게 하시라~
출처 : 팍스넷-쨍하고 돈 뜰날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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