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이치는 너무나 단순하고 쉽고 하찬아서 사람들이 오히려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경우가많습니다.
제 친형이 있습니다. 천성적으로 타고나길 성격이 느린 분 입니다.
그리고 별로 융통성도 없어 보이지요. 모든게 곧이 곧대로 여야 하고 기본에 충실한
성격 이었습니다. 그냥 자기일 열심으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지요.
그런 사람이 머리는 상당히 좋아서 고려 대학교를 나왔는데 하는일이 고작
프랭카드 제작 사업을 했었습니다. 남들이 보면 비웃을만 했지요..
집안이 가난해서 물려받은 재산없이 시작한 조그마한 자영업 이다보니
수입도 별로 하찬은 것이었습니다.
약 10년전 어느날 형이 그러더군요.
" 1억 까지만 모아 봐야 되겠다" 라고....
형은 불편하게 신혼생활을 부모님과 함께 작은 집에서 생활을 하고있었지요.
여행사를 다니던 저는 집에서의 생활이 불편해 회사근처에 세를 얻어 생활을 했었습니다
돌아보면 그때가 제가 결혼하기 바로 전 이었습니다.
그리고 몇년후 거짓말같이 형은 차곡차곡 현금 1억을 모아냈습니다.
신기하더군요...그 형편에 부모님을 모시고 생활비에..뭐에 만만찮은데..1억을 모으더군요.
느린 곰텡이가 그런 곰텡이가 없는것 같은 형이 결국은 1차 목표를 이루었습니다.
형이 1억을 모아야겠다고 한지 불과 3년 만에 말입니다. 악착같이 모았다고 봐야죠..
그리고 형은 곧 주식투자 라는걸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당시 주식시장은 정말 볼만했지요.. 초 급등에 급락에 현란하고 어지러울 정도 였습니다.
천성이 느린 형은 처음부터 단기 투자라는건 아예 생각조차 하질 않더군요
그래도 느린 곰텡이지만 공부에는 일가견이 있던 터라 열심히 기업의 가치를 파기 시작
하더군요.. 물론 저는 그때에 이미 결혼을 해서
운좋게도 여행사 직원으로 있다가 명동 한폭판 최고 상권에 자리잡은 웨딩샵을 하는
사장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몇번 여행 티켓을 팔다가 자연스럽게 알게된 사장님 이었는데
같은 남자로써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셨습니다. 그당이 나이 40대 중반에 명동에 3층자리
웨딩샵은 정말 큰 부자를 의미 했었죠..물론 지금도 마찬가지 지만요.
인격적으로 참 본받을 만한 분이었는데.. 남자들은 그래도 어쩔수 없는듯
어느날 애인인듯한 한 젊은 여성을 데리고 저희 여행사로 찾아 왔더군요
호주행 10박 11일 여행을 가고 싶다고
당장 여행 스케즐을 짜고 11일동안 단 한치의 오차도 없고 불편함도 없이 같은 금액으로는
최상의 여행이 되게끔 편안하고 즐거운 여행이 되게끔 서비스를 해 드렸지요;.
그날 이후로 급격히 그 사장님과 저와는 가까와져 비록 나이차이는 많지만
형님 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사장님의 비밀을 제가 공유하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요..
물론 그날이후 미국이며 유럽 동남아로 여행만 가게 되면 제가 스케즐 관리를 해 드렸습니다.
제 사업에 그분의 도움이 참 많았습니다. 여행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던 저는 제 친형보다는 어렸지만 그래도 사업에 승승장구
처가의 말류에도 어렵게 결혼했지만 내리 3년만에 집을사고 사업장을 두배씩으로 키우고
재산이 거짓말처럼 따블 또 따블로 늘어났었습니다.
형이 가소롭게 보일 정도였고
집안의 대소사는 저의 자금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역시 형은 공부빼곤 제 상대가 되질 못했습니다.
그런데 주식이라는걸 알게 되면서 형과 저와의 재산 그래프 곡선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공부 빼놓고는 뭐든 형보다 잘할 자신이 있다라고 생각했지요
실지 사업에도 훨씬 앞서 나갔으니까요.
저의 주식의 시작은 상한가 잡기 와 초단타 매매였습니다.
형의 주식의 시작은 우량주 장기 투자 였지요
저의 결과는 수도 없는 매매에 수수료에 미수거래에
쾌재를 부르며 좋아떤 순간도 많았고
한번에 억 단위로 돈을 벌기도 했지요.
물론 결국 단기간에 깡통으로 이어지더군요.
사업은 성공적으로 잘 하던터라..
투자자금은 언제든 땡겨서 쓸수 있었던 저는 깡통에 깡통을 밥먹듯이 하면서도
미친듯이 단타를 해대기 시작했지요..급등주를 찾아다니며....
형은 차분했습니다. 무리하지 않았고 차분히 우량주로만 수익을 내더군요.
그 수익도 처음엔 별볼일 없더니 나중엔 만만찮은 수익이 되더군요.
형은 주식을 하면서도 부동산 공부를 해서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고
공매나 경매에 대해 연구를 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주식으로 모은돈으로 신촌에 6층짜리 원룸을 경매로 낙찰 받더군요.
그때부터 저와의 재산경쟁은 완전히 역전이 되어 버렸습니다.
주식으로 손해를 봐도 모아논 재산도 있고 집도 있고 사업도 잘되던 제가
형이 경매로 건물을 낙찰 받은 이후 재산의 차이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주식에서 정말 초토화 되고 있던 어느날 부터 전 자존심을 버리고
3년쯤 전 부터 형에게 두손 두발 다 들고 주식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가치 우량주 장기투자 ..결국 형의 가르침의 결론 이었습니다.
그동안 잃어버린 돈이 얼마인지 정확히는 알수 없었지만 족히 6억 가까이는 되는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사업체를 담보로 신용 대출을 받은 적은 없기에 빚은 없었는데
형에게 가르침을 받은 저는 아무도 모르게 신용대출을 신청했지요
결론은 그 돈으로 장기 투자를 한 결과 그동안 잃었던 모든 자금을 회수하고도
현제 몇억 정도를 수익을 내게 되었습니다.
물론 운좋게도 대세 상승 초기에 투자를 한 결과이기도 했지요.
형은 지금 재산이 정확히는 알수 없지만 ( 워낙에 속을 들어내지 않는 사람이라.)
제 보기에 족히 50억 이상은 될거 같습니다.
주식에 아파트에 부동산에 원룸에 일산에 있는 다른 건물에
대충 제 생각에 그정도는 될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8년전에 1억으로 그렇게 벌었습니다.. 놀랍더군요.
저는 다행이 원금회복하고 주식에서도 플러스를 냈으니 천만 다행으로 형의 3분의 1은 됩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 합니다.
형만한 동생이 없다라는말 ... 거짓이 아니더군요.
느린 곰텡이 형이 아니었으면 지금쯤 ....생각만해도 끔찍합니다.
그렇게 느려 터져도 가만히 보면 쓸데없이 시간을 보내는 게 거의 없습니다.
영어에 일본어에.. 피아노도 칠줄알고.... 난을 가꾸는데는 제 보기에 수준급인것 같고
성질이 급한 저는 대부분 공부만 빼고 형보다 앞서간다고 생각했는데
도무지 내가 어떤면에서 형을 앞서간다고 생각했는지 알수가 없습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책을 읽어 보았습니다.
"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
일면 저희 형과 닮은 면이 있는것 같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들더군요.
서두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쉬지도 않는다.
느린것 같지만 결국 모든걸 이루어 내는걸 보면서
참 인생에서 성공이란게 어찌보면 단순한 가치를 실천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 봅니다.
주식도 그렇습니다.
느린게 빠른것이지요. 역설적이게도 손실을 많이 본 분일수록 더욱 그러합니다.
마음만 급할뿐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미수로 급등주 따라 잡다가는
그야말로 깡통의 반복일뿐입니다.
그럴수록 더욱더 천천히 가는방법을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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