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도 아니고 두번째로 듣게된 그 "아씨~~" 라고 부르는 소리...
그 덕분에 들어온지 갓 두달 된 새 며느리의 실수는 모면했지만 도대체 그 소리가 어디서 난건지, 정말 그 소리 자체가 있긴 했던건지, 있다면 누가, 왜, 자기를 늦잠 자게 되는 실수를 할 때마다 구해주는건지... 친구 어머님은 한동안 궁금하고 답답하고... 겁도 나고.. 머릿속이 아주 복잡하셨답니다.
시집 온지 얼마 안 된지라 마음 속에 있는 도깨비 방망이 얘기 같은 걸 시어른들께 꺼내놓고 얘기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고, 집안 일 하시는 아주머니 말씀대로 자신이 항상 긴장을 해서 그런건가 하면서 속으로만 담아두고 며칠을 보내셨답니다.
그러고는 한 일주일 후에, 계획대로라면 제 친구 아버님이 주말을 맞아 시골집으로 내려오셔야 했지만 한달만 지나면 이사 들어갈 집에 도배하는 일이며, 계시던 하숙집 이삿짐 정리 등으로 그 주말은 내려오지 않으시기로 했답니다.
그 대신 새색시 되시는 제 친구 어머니께서 오랫만에 서울로 올라가서 주말을 보내시고 가신 김에 벽지도 고르시고, 이사준비를 도와주시고 계시는 친정 어머니도 만나고 오시기로 하셨습니다.
시집가신 후 처음 가지는 나들이가 되는 셈이었습니다.
목요일 늦은 밤, 다음 날인 금요일 오전의 서울행 기차를 타려고 결정하신 친구 어머님은 간단하게 짐을 챙기신 후 보통때 보다 조금 늦게 잠자리에 드셨답니다.
단지 두달 정도였지만 떠나온 서울이 너무 그립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친정 부모님을 만난다는 생각에 그렇게 설레일수가 없으셨답니다.
한 밤중에는 소풍 전날밤의 아이같은 설레임으로 잠을 자는둥 마는둥 하시다가 새벽녘이 되서야 살짝 잠에 드셨는데..
갑자기 누우신 이부자리에 뭔가 느껴지는 듯한 기분에 눈을 뜨셨답니다.
조금씩 밝아오는 새벽, 방안의 모든 것이 푸른 빛으로 어슴프레 보이기 시작하는 때였고.
방안은 여느때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눈을 감으려는 순간 갑자기 이불 끝 즈음에서부터 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났답니다.
잠이 확 다 달아나시더라는군요.
갑자기 들리는 그 소리에 어떻게 할바를 몰라 어머님께서는 자는척 하며 주위를 살피셨답니다. 하지만 잠시 난 사그락거림은 잘못들었던 것처럼 더이상 들리지 않아 몸을 살짝 돌려 옆으로 누우시려고 했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바로 자신의 어깨 아래 몇발치 떨어진 이불 귀퉁이로부터 조그마한 미동이 느껴지셨답니다.
친구 어머님께서는 눈을 감은척 실눈을 뜨신 채로 목만 살짝 굽혀 미동이 느껴지는 곳을 내려다 보셨답니다.
미동이 느껴지는 그 곳에는 누군가 지금 손으로 눌렀다 땠다하듯 이부자리 끝이 살짝살짝 들어가더랍니다.
주무시던 이부자리는 솜을 두툼하게 넣어, 면으로된 이불 호청을 둘러 만든 옛날식 두꺼운 요였기 때문에 어린아이라도 그 위를 밟고 지나간다면 어느정도 발자국처럼 폭폭 들어가는 두께였답니다.
그런데 그 요 가장자리부분이 누가 손으로 누르는 듯, 아니면 작은 발로 걸어가는 듯 살짝살짝 들어가는 모양이 보이고... 친구 어머님은 그 자리에서 목소리도 못 낼 정도로 얼어붙으셨다고 합니다.
그 작은 움직임은 천천히 윗쪽으로 올라오다가 어머님 얼굴과 세 네뼘 되는 곳에서 멈추고 더이상 계속되지가 않았답니다.
일 분도 체 안되는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너무나 가깝게, 너무나 선명하게 겪으신 이상한 일 때문에 이른 아침 내내, 그리고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계속 그 생각을 떨처버릴 수가 없으셨습니다.
이제는 이상하기보다 더이상 그 방에서 혼자 잘수 없을것만 같이 겁이 나셨답니다.
서울에 도착하셨을때는 남편되시는 제 친구 아버님의 퇴근시간이 아직 좀 남은 이른 오후였기에 계획대로 친정집으로 먼저 가셨답니다.
그제서야 기차를 타고오면서 생각하고 느낀 그 모든 묘한 기분을 다 잊고 오랫만에 만난 친정 어머니와 대학다니고 있는 여동생에게 그간의 시댁 생활 얘기를 시작하셨답니다.
그리고는...다시 떠오른 몇가지 그 겪은 이상한 일들에 대해 망설이시듯 꺼내셨답니다.
늦잠 잘뻔 할 때마다 깨워주는 듯한 그 목소리와 바로 오늘 겪은, 누군가 자기의 이부자리를 매만지는듯한 느낌...
그 얘기를 들으며 여동생은, 그러니까 제 친구의 이모님께서 농담처럼
"언니야, 무당이라도 찾아가야되는거 아니야?" 하시더랍니다.
안그래도 찝찝하고 답답한 기분에 무당소리를 들으니, 정말 생전 안 가 본 무당이라도 찾아가 보고싶단 생각이 드시더라는군요. 하지만 무당을 찾는다는게 왠지 케케묶은 생각하시는 할머니들이나 하는 일 같아 막상 그렇게 하자는 소리도 못 하셨다는군요.
그렇게 저녁이 되고 친정집으로 퇴근한 신랑을 만나고, 오랫만에 친정 식구들과 가진 재미있는 시간에 밤 늦게까지 수다를 떨었고, 그 다음날인 토요일 아침, 남편이 출근하자마자 제 친구 어머니는 친정 어머님과 나가서 벽지도 고르고, 도배 날도 정하고, 세간살이도 고르고... 그렇게 신혼 살림 준비를 하셨고...
그 동안은 시댁에서 겪은 모든 일을 까마득히 떠올리지 않으셨답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월요일 아침이 왔고... 친구 아버님은 장인어른 댁에서 곧바로 출근을 하시고.
친구 어머님의 계획대로라면 신랑이 출근하는 길에 같이 나서서 다시 시댁으로 내려오시기로 했는데....
어쩐일인지 친정 어머니께서 잠시만 더 있다가라고 자꾸 잡으시는 바람에 남편부터 먼저 출근 시키고 뒤로 남으셨다는군요.
사위가 출근하자마자 친정 어머니는 제 친구 어머니께 어디 잠시만 들렀다 그길로 내려가라면서 다른 말씀도 안하시고 제 친구 어머니를 데리고 집을 나서셨고, 제 친구 어머님은 어딜가려는데 이러시냐며 친정어머님께 물어도 가는 길에 얘기하자시면서 그저 손목을 잡아 이끄시는데로 따라갔답니다.
택시를 잡아 타고 어딘가로 가시는 길에 그제서야 친정 어머님은 오랫만에 집에 오자마자 당신 딸이 한 얘기가 영 맘에 걸리고 걱정이 되셔서 도저히 이데로 보낼수가 없으시다고 하셨다는군요.
친구 어머니는 그런 친정 어머니를 안심 시켜 드리려고 뭐 그런걸 다 신경 쓰시냐고, 난생 처음 시댁이란 곳에서 남편도 없이 긴장해서 지내다보니 헛기분도 들고 하는걸꺼라는 말씀까지 드렸지만 친정 어머니께서는 니가 괜찮다고 해도 내가 걱정이 되서 이렇게는 못 보낸다고 하시며 결국은 어느 작은 절까지 딸을 데리고 가셨답니다.
제 친구 어머님댁은 불교를 믿으십니다. 특히 제 친구 외할머니가 그쪽으로는 아주 정성이라십니다.
하지만 사실 점을 보고, 굿을 하고, 무조건 미신을 따르고 하는건 불교의 본래 뜻 자체와 그리 맞지는 않다는군요. 그래서인지 무당은 아니고 작은 절에 그런쪽으로 아주 예민한 감각이 있으시다는, 친정 어머님께서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스님을 찾아가신거랍니다. 제 친구 어머님께서는 기억 날 듯 말 듯 어릴때 한두번 만나뵌 적이 있는 스님이란것만 생각이 나시더랍니다.
그 스님을 만난 제 친구 어머님과 친정 어머님께서는 제 친구 어머니가 겪으신 얘기는 하지도 않고 그냥 안부 인사가 오가고, 그 절에 오시는 다른 분들 얘기를 하고.....그렇게 한 시간이 넘도록 겉도는 얘기만 오갔답니다.
그런데 이 스님이 갑자기 제 친구 어머님께 하시는 말이,
"시집살이가 고달플 일은 없겠구나, 밤낮으로 아씨를 보살피는 덕을 니가 보는구나...."
이렇게 딱 두 마디 하시더랍니다.
그러자마자 제 친구 어머니는 머리가 핑 돌정도로 놀라셨답니다. 그 "아씨" 란 단어에 말입니다.
그 "아씨" 란 말이 바로 제 친구 어머니께서 헛소리를 듣듯 들으신 단어고, 그 "아씨" 란 단어 덕에 늦잠을 자 버리는 실수를 모면한 적이 있기때문이었죠.
네..그리하여...시작된 스님의 말씀...친정 어머니도 제 친구 어머니 본인도 너무 놀라셨다는군요.
친구 어머니의 시댁을 한번도 가신적 없는 스님은 이미 그 시댁이 아주 오래된 건물로 된 집이라는 걸 들여다 보시듯 아시더랍니다.
그러시면서 바로 앞에 앉아 겁을 잔뜩 먹고계신 친구 어머님을 보시면서 걱정할것 없다, 널 헤꼬지 할려는게 아니고 널 돕기만 하려는 불쌍한 것이니 겁먹지 말고...내가 하는대로 듣고 따라서 구천에서 떠도는 영혼 하나 좋은데로 보내주자 하시더랍니다.
그러고는 스님은 가부좌를 틀고 앉으셔서 눈을 지긋히 감으시고 나직하게 염불을 올리시더랍니다.
한참 만에야 입을 여신 스님의 말씀인 즉...
지금 시부모님들이 태어나시기 전, 불과 몇 대 바로 위로 아주 어린 나이에 이 가문으로 시집온 규수가 있었고, 그 당시엔 집안이 웬만큼만 되면 딸을 시집보낼때는 그 딸이 고생하지 않도록 친정에서 몸 종 한 둘은 꼭 따라서 보냈답니다.
그래서 이 어린 규수가 시집을 왔을때도 이 애기 "아씨" 보다는 나이가 좀 더 많은, 하지만 지금으로 하면 그 마저도 어린 계집아이에 불과한 나이의 몸종이 따라 왔고, 이 착하고 의리(?) 있는 몸종 아이는 자기가 모시던 애기 아씨가 시집가는통에 자신의 부모마저 뒤로 하고 이 아씨를 따라와 섬겼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이 몸종 아이가 아씨를 평생 섬기지 못하고 아씨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갔다는군요.
그래서인지 이 몸종은 저 세상으로 가는 다리를 훌쩍 건너지 못하고 죄송한 맘이 남고 애기 아씨를 걱정하는 맘에 그 집을 맴돌면서 아씨를 찾고 있었다는군요. 그러면서 세월은 흐르고 ....또 흐르고.....
어떻게 해서 제 친구 어머니가 그집으로 시집을 가시고 우연하게도 그 아씨를 찾아 헤메던 영혼은 제 친구 어머니가 다시 돌아온 그 애기 아씨라고 믿고 예전 처럼 애기 아씨를 섬기기 시작했답니다.
아직 어린 나이라 한 참 아침 잠이 많았을 애기 아씨를 새벽마다 깨우고 바로 곁에서 아씨를 돌보고 있다는 겁니다.
스님은....미련이 너무 크게 남아 이승을 떠도는 이 착한 영혼을 훌훌 보내줘야 한다고, 그럴려면 뭔가 매개체가 있어야 하는데 그걸 찾지 않고는 이 영혼은 끝까지 구천을 떠 돌며 몸종 노릇만 하며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날 기회를 얻지를 못한다고 하셨답니다.
그걸 찾고 그 뒷처리를 해야만 그 영혼은 이 세상을 떠날 수가 있을 것이라고 .....
하지만 그 몸종과 그 애기 아씨가 이 세상을 떠난 이후로 몇 번이나 대가 바뀌어 사람들이 살았던 이 집에서 어떻게 이 몸종과 연관된 무언가를 찾느냐 하는거였습니다.
친구 어머니는 스님께 과연 그런게 처음부터 있기나 하겠느냐는 질문을 하셨답니다.
스님은 그 매개체가 없고서는 이 몸종이 이렇게 남아 떠도는 것 자체가 더 이상한 일이다 싶을 정도로 분명 어딘가에 이 몸종아이와 관련된 무언가를 찾을수 있을것이라고 하셨답니다.
그렇게 밑도 끝도(?) 없는 방도를 갖고 시댁으로 돌아온 제 친구 어머니는 그 날부터 틈만 나면 오래된 문갑이며 옷장도 열어보고 이방 저방 보물찾기를 하셨답니다.
사실...자기를 헤치려하는 게 아닌것도 알았겠다, 별로 겁날 것도 없어 그 보물찾기가 게을러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어린 계집아이의 떠도는 영혼을 생각하니 그렇게 불쌍하게 느껴질 수가 없으시더랍니다.
선택도 없이 뉘 집 몸종으로 태어나서 일하다, 아직도 부모 품에서 보호만 받을 어린나이에 집에서 모시던 애기아씨를 따라, 부모 형제까지 뒤로 하고 먼 고장으로 따라왔을 이 아이를 생각하니 너무나 불쌍하고 가슴이 아파서 이젠 반드시 이 아이를 편하게 쉬게 해 주고 싶다는 맘이 드셨답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이것이 자기의 업보인 것 같기도 하고....자기가 꼭 해 줘야만 한다는 느낌이셨답니다.
그러던 중에 하루는 예전에 곳간으로 쓰던 지금의 창고에서 그 보물찾기를 하셨는데...
그곳은 명절때만 쓰는 가문대대로 내려오는 상과 제사 물건들, 병풍이며...말이 창고이지 시아버님의 각별한 관리 아래 아주 깔끔하게 정리 정돈된 가문의 박물관이나 다름 없는 곳이었답니다. (그 관리는 제가 거길 놀러 갈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정말 창고라기 보다는 소박한 전시장 같을 정도로 깨끗합니다.)
그런데 친구 어머니 눈엔 구석에 자리잡은 뒤주라고 불리는 나무로 된 큰 쌀 통이 띄이더랍니다.
요즘은 물론이려니와 제 친구어머니가 시집가신 그 당시만 하더라도 웬만한 대가족 아니고는 아무도 그렇게 큰 통에 쌀을 넣어 놓고 먹는 가족이 없었기에 그 뒤주는 언젠가부터 곳간에서 다른 작은 물건들을 올려놓는 선반의 역할을 하고 있었답니다.
그런 뒤주가 친구 어머니 눈에 띄이긴 했지만 그 뒤주 자체던 그 위에 올려진 잔잔한 물건이며....그 어느 것도 그 몸종 아이와 연관되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더랍니다.
그런데 그날 밤 제 친구 어머니의 꿈에서 그 뒤주를 다시 보셨답니다.
꿈 속에 친구 어머니는 그 뒤주를 향해 창고로 걸어 들어가셨답니다. 정말 특별할것 없는 꿈이고, 바로 같은날 본 오래된 뒤주가 꿈에 다시 나오는 것도 특별하지도 않는데도 아침내내 그 뒤주에 왠지 자꾸 마음이 가시더랍니다.
그래서 다음날 다시 그 창고로 들어가신 어머니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뒤주 위에 얹혀진 이것저것 작은 물건들을 다 내리고 뚜껑 같은 부분을 들어 올려보셨답니다.
뚜껑이 열리고, 오래된 나무의 특유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어른 허리까지 오는 그 깊숙한 뒤주 안을 들여다 봤더니 그 안에는 시아버지가 넣어두신듯한 신문지에 쌓인 숯 뭉치들 그리고 누런 한지 같은 것에 쌓여 있는 실타래, 옛날에 수를 놓을때 쓰던 둥그란 수 틀...
그리고...........손잡이가 달린 나무 상자가 하나 있더랍니다.
뭔가에 끌린듯이 친구 어머니는 그 상자를 집어 올렸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아 그 오래된 상자를 열어 보셨답니다.
그 아주 오래된 듯한 상자를 여니, 그 안은 한지로 곱게 발라져 있고 이 상자 전체가 바느질 할때 쓰는 작은 물건들을 넣어 두는 바느질 통이라는 걸 금새 알 수 있게 이미 색이 바래버린 천을 겹겹으로 해서 만든 작은 골무, 녹슬었지만 이쁜 모양의 작은 가위, 실을 감아둘때 쓰는 듯한 나무로 만든 작은 패,
..........그리고 아직도 바늘이 꽂혀있는 천으로 만든 손바닥만한 바늘 꽂이가 있더랍니다.
하지만 그 바느질 통이 언제적 것인지도 잘 모르고, 워낙 옛 물건들은 잘 관리 하시는 시아버님 덕에 사실 이 바느질 통이 얼마나 오래된 건지도 알 수가 없게 보관이 잘 되어 있더랍니다.
하는 수 없이 그 바느질통을 그대로 챙겨 들고 나와 시아버님께 여쭤봤답니다.
속 사정을 모르시는 제 친구의 할아버님께서는 며칠동안 그렇게 집안을 돌아다니며 뒤지더니 결국은 그거 하나 건졌냐며 새 며느리가 정말 보물 찾기라도 한 줄 아시더랍니다.
친구 어머니는 시아버님께 이것저것 물어 결국 이 바느질 통이 시아버님의 할머님이 대물림 받아 쓰시던, 수를 놓을 때 쓰는 바느질통인거라는것을 알아냈고 그 이후에는 집안에 수 놓기에 솜씨 있는 여자들이 없어 할머님이 쓰시던 물들인 명주 실타래며 바느질 통 자체를 곳간안에 모셔뒀다고 하셨답니다.
그러다 뒤주 안에까지 들어가게 된거구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어떤 물건이 몸종 아이를 이승에서 떠나보내게 해 줄 매개체인지 알수가 없었다는군요
이 바느질 통은 그저 옷이나 깁는 바느질을 할때 쓰이는게 아닌, 양반댁 규수들이 점잖게 앉아 비단에 수를 놓을때나 쓰는 바느질 통이기에 이 바느질 통의 주인도 그 몸종아이 일수가 없는거구요.
그런데 갑자기 손이 가는 물건이 있었는데........
바로 천으로 만든 바늘 꽂이 였답니다. 여러분, 바늘꽂이 다 아십니까? 이게 어떻게 보면 조그마한 배게처럼 통통하게 생겼는데 솜같은 걸 빵빵하게 넣고 바느질 실땀으로 기워 만든 물건입니다. 바늘을 쓰면서 잃어버리지 않도록 꽂아 두고 쓰는 겁니다.
정말 뭐에 홀리듯 그 바늘꽂이를 두손으로 붙잡고 바느질 된 부분을 가운데로 두고 실땀이 조금 뜯기도록 잡아 당겼답니다. 실땀이 한 두개뜯겨지니 몇 땀 더 뜯어지는건 더 쉬워서 손가락이 하나 정도 들어갈만한 구멍이 나고.......
거기에서 삐져나온건......새카만 머리카락 뭉치였다는군요.
저는 나중에서야 안거지만...요즘 바늘은 스테인레스로 된게 많아 녹도 잘 안 쓴다는군요. 하지만 옛날 그 시절의 바늘은 콧기름, 머릿기름을 발라가면서 바느질을 해야 할 만큼 매끈하지도 않고 좀 오래 두면 녹까지 쓸기때문에 사람 머리칼을 잘라 모아 만든 바늘 꽂이에 바늘을 꽂아 두고 썼답니다.
친구 어머니가 홀린 듯 찾아 낸 것도 바느질 통 자체가 아닌 바늘꽂이 안의 머리카락이었구요.
솔직히 아직까지도 그 머리카락이 누구의 것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 친구 어머니는 그날 바로 그 바늘 꽂이를 통째로 담벼락 아래에서 태우셨답니다.
그리고 맘 속으로는 '잘가세요, 다음에는 편안한 팔자로 꼭 다시 태어나세요' 빌고 또 빌으셨답니다.....
정말 그 머리카락이 누구의 것인지는 아무도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제 친구 할아버지의 할머님 되시는 분이 그걸 마지막으로 쓰셨다는 것 밖에요.
어쩌면 그 할머님이 바로 그 어린 나이에 시집온 애기 아씨였을 수도 있고,(딸이 시집갈때 몸종이 따라가던 풍습은 1900년도 초반에도 존재하던 풍습이니까..그 할머니란 가능성은 분명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분을 따라 온 몸종 아이가, 비단실로 수를 놓고 있는 애기 아씨 옆에서 재미삼아 자기 머리카락을 조금씩 잘라 모아 바늘 꽂이 하나를 만들었을 수도 있고요....
자신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난, 어떻게 보면 친정 식구이기도 한 그 몸종 아이를 생각하며 그 아씨는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되도록 그 바늘꽂이를 간직해 두며 썼을수도 있고요.
무서운 얘기만 기대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런데 저는 꼭 귀신 나오는 무서운 얘기뿐만 아니라 이렇게 전설의 고향같은 것도 즐기는 스타일이라... 제가 친구와 함께 친구네 할아버지 댁에 갔을 때 들려준 이 얘기를 아직도 가끔 떠올립니다.
길고 긴 제 글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