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이야기들  
무인도 표류자와 부자 노인
작성자 : 이억만리 (814kms) / 2019.11.30 오후 12:16:57 / 조회 : 1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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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한가운데에서 배가 침몰했다. 운이 좋아 살아남은 사람들은 한 무인도의 해변에서 깨어났다.

이미 죽어 시신이 된 사람들을 제외하면, 살아 있는 사람들은 10여 명.


어떤 사람은 멍하니 주저앉았고, 어떤 사람은 엉엉 소리 내 울었고, 어떤 여인은 남편의 시신을 껴안고 울었고, 어떤 사내는 숲 쪽을 확인하러 들어갔고, 어떤 사내는 해변에 떠내려온 물건들을 정리했고, 어떤 사내는 해변을 따라 섬을 한 바퀴 돌았다.


시간이 흘러 해가 지고 난 뒤, 사람들은 모두 모여서 대책을 논의했다. 결론은 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티자는 것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식량이었다. 다행히 한 사내의 직업이 식품연구원이었고, 그의 캐리어 안에는 햄 통조림이 종류별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으로 허기를 채우고, 모두 함께 해변에 모여서 잠을 잤다.


다음 날, 그들은 나무를 이용해 해변에다 거대한 SOS를 그렸다. 마른나무들을 모아 불을 지피고, 떠내려온 시신들을 수습해 한곳에 모아두었다.

어서 구조대가 오기만을 바라며, 햄 통조림을 먹으며 하루를 보냈다.


다음 날, 그다음 날, 그다음 날. 일주일이 넘도록 구조대는 오질 않았다. 그 와중에 부상이 심했던 한 사람이 사경을 헤매다 사망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보며 공포를 느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기 시작했다. 구조대가 오기 전에 모두 죽거나, 구조대가 오지 않거나.

현실적으로도 가장 중요한 식량 문제가 마음에 걸렸다. 섬의 숲에 먹을 만한 열매라고는 야자열매 몇 개가 전부였고, 그들이 가진 햄 통조림도 거의 떨어져갔다.

햄 통조림의 주인이 냉정하게 말했다.


“우리가 살기 위해선 합리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 몇 안 남은 통조림을 최대한 아껴야 합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죄송한 말이지만, 오늘내일하시는 노인분께는 더 이상 햄 통조림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 우리 모두를 위한 합리적인 일이 아닐까생각합니다.”


노인은 당황했다. 다른 사람들도 표정이 불편해졌다. 하지만 합리적이라는 단어가 그들의 입을 다물고 있게 만들었다.

그는 내친김에 말을 더 이었다.


“전쟁 상황에서 부상병들이 막사로 실려 오면, 너무 크게 다친 병사들은 아예 치료를 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치료한다고 해서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 의약품을 다른 병사들을 살리는 데 쓰면 더 많은 병사를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지금의 상황이 딱 전쟁 상황과 같습니다. 우리는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앞으로 이 섬에서 얼마나 더 지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겨울을 나야 할지도 모르죠. 다리까지 다치셔서 오늘내일하시는 노인분은 앞으로 저희 생활에 짐이 되면 되었지 도움이 될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쓰레기라 욕해도 좋습니다. 저의 계산으로는… 노인분을 끝까지 안고 가는 것이 합리적으로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


노인은 침묵했다. 사람들도 침묵했다. 인도적으로는 마음이 불편했지만, 합리적이라는 단어가 마치 어쩔 수 없다는 말처럼 들렸다. 게다가 그들은 모두 죽음의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때, 노인이 입을 열었다.


“나는 사실, 사회에선 그런 통조림 같은 건 먹지도 않네. 아니, 있는 줄도 몰랐지. 자네들 ◯ ◯소주를 아는가?”

“…”

“내가 그 소주 회사의 회장이네.”

“헛!”

“그깟 소주 회사 회장이라고 우습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가진 재산이 수백 억이 넘네. 만약 사회였다면 통조림 하나에 이런 취급을 받을 일이 절대 없는 사람이지.”


사람들은 노인을 달리 보았다. 노인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 줄은 전혀 몰랐다. 반면에, 그런 대단한 노인도 결국 무인도에 떨어지면 한낱 힘없는 노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그들의 머릿속을 스쳤다.

노인은 형형한 눈빛으로 사내를 향해 말했다.


“그 통조림 하나를 천만 원에 사지.”

“!”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통조림 하나에 천만 원이라니!


사내가 아무 말도 못 하고 노인을 보고만 있자, 노인이 다시 말을 했다.


“천만 원이라는 단위가 현실감이 떨어지는가? 그렇군. 그렇겠지. 그럼 500만 원으로 깎도록 하지. 믿을 수 있겠나?”

“아, 아니…”

“더 깎아야 믿을까? 300? 100?”


사내는 정신을 차리고,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아, 아니,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어르신이 사회에서 어떤 분이셨는지 몰라도, 이곳에서 어르신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노인은 담담히 대꾸했다.


“만약 우리가 구조되어 사회로 돌아가게 되면, 그때 돈을 치러주겠다는 걸세. 여기 있는 모두를 증인 삼아 말이야.”

“그건 구조가 됐을 때 이야기고 지금 당장은…”

“어차피 우리는 구조될 것 아닌가? 아니면, 우린 뭘 기다리고 있는 거지?”

“…”


노인의 한마디에 사내의 입이 다물어졌다. 맞다. 자신들은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었던가? 그렇지 않다면야 이렇게 아등바등 캔 하나에 목숨 걸지도 않았을 것이다.

노인은 담담하게 말했다.


“나중에 구조가 됐을 때, 모든 금액을 치러주겠네. 내 약속하지. 그러니, 나에게도 통조림을 나누어주게아. 니, 나에게 통조림을 팔게.”


사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어느새 노인에게 압도당한 듯했다. 결국, 사내가 제안했던 합리적인 희생 방식은 흐지부지되었다. 그날 저녁에도 노인을 포함한 모두가 통조림으로 식사를 했다.


다음 날, 사람들은 장기전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구조대가 언제 올지 알 수 없으니, 오래 버틸 수 있는 계획의 필요성을 깨달은 것이다.

가장 먼저 집을 지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동안은 언제든 구조대가 오면 떠날 셈으로 순번을 정해 해변에서 밤을 새우거나 쪽잠을 잤지만, 너무나 춥고 힘들었다. 집을 지으려니 당장 노동력, 힘쓰는 능력이 필요했다. 대부분 젊은 남자들이 나서야 했다. 그들이 집을 지으며 땀을 흘릴 때, 노인이 말했다.


“자네들이 건강하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을 제공해야 할 의무는 없네. 자네들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아닌 것이지. 자네들의 노동은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해. 집을 짓는 동안 하루 일당으로 50만 원씩 쳐주겠네. 그 비용은 사회에서 내가 지급하지.”


노인의 말이 괜한 공수표 남발인지도 몰랐다. 그래도, 집을 짓는 남자들은 기분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하루 50만 원 일당은 사회에서도 못 벌어본 돈이 아니었던가. 노인의 말이 거짓말이든 아니든 어차피 집은 지어야 했고, 그렇다면 차라리 진짜라고 생각하는 게 더 좋았다.

힘들던 노동도 50만 원의 일당을 받고 하는 일이라 생각하니까 조금은 편해졌다. 웃음도 나왔다.


“흐읏차! 편의점 알바 뛰다가, 하루 일당 50만 원씩 받으니까 기분은 좋네! 으랏!”

“그러게. 내 월급이 200이 안 됐었는데 말이다. 무인도 와서 이게 웬 횡재냐?”


사람들은 점점 체계적으로 장기전 태세에 들어갔다. 엉성하지만,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집을 두 채나 지었고, 증류수를 꾸준히 모을 수 있는 장치와 비닐을 꾸려 빗물을 모아두는 장치 등을 만들었다. 식량 문제도 조금씩이지만 해결되었다. 장기전을 계획하고부터는 본격적으로 바다 사냥을 나갔고, 물고기들, 하다못해 조개들과 작은 게들이라도 잡아 식량으로 삼았다.

사람들은 점점 무인도 생활에 적응해나갔다. 그들의 무인도 생활 속에서, 노인이 유행시킨 것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사회에 두고 온 재산이었다. 그 작은 무인도 사회에서도 그들은 돈을 통용시켰다. 사회에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재산을 노트에 적어놓고 소중히 보관했다. 그들은 그 재산을 이 무인도에서 사용했다.

누구도 재산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실제 돈을 쓰듯이 신중하게 사용했다. 그들에게 그 재산은, 마치 사회와 무인도를 연결해주는 현실의 끈처럼 느껴졌다. 그 돈을 장난처럼 치부해버리는 순간, 구조에 대한 그들의 희망도 사라져버릴 것처럼 느껴졌기에 더더욱 진실로 대했다.


첫날 남편을 잃고, 넋이 나간 듯 지내던 여인이 어느 날, 무심코 풀잎을 엮어 모자를 만들었다. 그 모습을 보던 다른 한 여인이 말했다.


“그 모자 정말 예쁘네요. 제게 파시겠어요? 3만 원 드릴게요.”


여인은 얼떨결에 모자를 3만 원에 팔았고, 다시 풀잎을 모아 모자를 엮었다. 그날 이후 그녀는 무인도에 있는 내내 모자와 장신구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마음에 드는 것들을 골라 그녀에게 돈을 내고 샀다. 그녀는 좀 더 예쁘게, 좀 더 멋지게 만들기 위해 디자인을 고민했고, 재료를 다양화했다. 그녀는 무인도에서 무척 바쁜 사람이 되었다.


사회에서 백수로 지내던 한 청년은, 물고기 사냥의 신이었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사냥을 잘했다. 청년은 사냥한 식자재들을 공짜로 나누지 않았다.


“자네가 잘 잡는다고, 우리에게 사냥을 해주는 게 당연한 게 아니야. 자네는 힘들게 사냥한 것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만 해.”


청년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해서 사냥했고, 무인도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벌었다.

또 어떤 이들은 만 원씩 걸고 내기 바둑을 두기도 했다.


“자네들, 또 내기 바둑 두나?”

“아, 무인도에서 할 게 뭐 있습니까?”

“흠… 자넨 저기에 두는 게 어떤가?”

“어르신, 훈수는 안 됩니다! 이게 판당 만 원짜리인데! 어르신이 대신 내주실 겁니까?”

“내가 왜 내나? 자네가 다 둔 걸 가지고.”

“이런.”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돈으로 거래했다. 무언가 쓸 만한 도구를 만들어 파는 이도 있었고, 물고기 손질과 요리, 빨래, 미용, 집의 확장이나 보수 작업, 심지어 소설을 써서 들려주고 돈을 받는 이도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돈을 벌기 위해 무언가를 했다.

그것이 그들의 무인도 생활을 버티게 했다. 그리고 결국, 그날이 왔다.

거대한 SOS 마크를 매일매일 정비한 보람이 있었는지, 지나가던 헬기가 그들을 발견했다.


“배다! 배가 다가온다! 배야! 배가 오고 있다고요!”


그들은 기어이 구조됐다. 몇 개월을 무인도에서 견뎌내어 기어코 구조됐다. 그들은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구조된 배 위에서 고향으로 향하며, 서로 얼굴을 마주치기만 해도 눈물을 흘렸다.

그들의 소식이 전해지고 가족들이 마중하러 온 항구로 향할 때, 노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모두가 들뜨고, 기쁘고, 환한 얼굴이었지만 노인의 얼굴만은 어두웠다. 눈을 질끈 감은 노인은 고백했다.


“용서하게들. 사실 난 기업의 회장이 아니야. 그런 재산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네. 그날 그 자리에서 살고 싶어서 거짓말을 한 거야… 미안하네.”


사람들은 노인을 돌아보았다. 그들 모두 노인에게서 수천만 원씩 받을 돈이 있었다.

이윽고 그들은, 노인을 향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게 다였다. 그냥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사실, 그 노트도 이곳에 없었다. 서로의 재산이 오고 간 그 노트는 무인도에 두고 왔다. 아무도 그걸 챙기지 않았다. 그 노트의 역할은 거기까지였다. 무인도 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것. 그거면 충분했다.

이후 방송에 출연한 그들은 항상 말했다.


“통조림 몇 개 때문에 한 노인을 죽이려고 했을 때, 저희는 짐승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한 노인을 살려주고 나니, 그제야 저희는 사회 속에 사는 인간이 되어 있더군요. 그래서 저희는 살았습니다.”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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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m328
뭔가 생각을 하게 되는 글이네요....감사합니다. [19/11/30 오후 4: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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