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시골의 친척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밤 소변이 마려워 깼는데, 변소에 가는 것이 망설여졌습니다.
그 집 변소가 마당 한쪽 끝에 있어서 깜깜한 밤에 저 혼자 마당을 나가기가 무서
웠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참기가 어려워 마당으로 나갔는데 변소 옆 커다란 나무에 하얀 뱀이 늘
어져 있는 게 아닌가요?
너무나도 놀라 방으로 황급히 들어갔던 기억이 납니다.
다음 날 아침 마당에 나가 보니 나뭇가지에 걸려 있던 ‘하얀 뱀’은 풀어진 화장지
였습니다.
전날 낮에 동네 아이들과 화장지를 던지며 놀았는데 그때 그게 나뭇가지에 걸렸
던 것 같습니다.
밤새 그렇게도 두려워했던 것이 고작 화장지라니요.
두려움에 대처하는 방법은 두 가지, 즉 두려움에서 도망치는 것과 두려움 그 자
체를 직면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날 밤 제가 ‘저게 뭐지?’라는 호기심으로 나무 가까이에 가 봤다면 두려
움 자체를 느끼진 않았을 겁니다. 화장지임을 알아챘을 거니까요.
그러나 저는 무서워서 그냥 방으로 들어가서는 밤새 뱀 생각으로 잠을 설쳤습니
다.
「현명한 사람은 마음을 다스린다」(담마난다 저)에서 저자는 "현명한 자와 우
둔한 자의 차이를 구별 짓는 것은 ‘문제를 마주한다’는 사실에 있는 게 아니라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사업에 실패했을 때 가장 쉬운 대응은 남을 탓하는 겁니다.
사실 남 탓은 자신이 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할 때 더 심해집니
다.
그러나 다른 접근 방식은 ‘어쩔 수 없지’라며 실패를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같
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어떤 면을 고쳐야 할지를 숙고해 보는 겁
니다.
똑같은 실패를 두고도 그 실패에 대한 대응 방식이 어떠냐에 따라 삶의 질은 완
전히 달라집니다.
이 책에서는 "두려움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학생의 질문에
영국의 유명한 해부학자의 대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남을 위해 무엇이든 해 보라.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마음속에
가질 수는 없다.
한 가지 생각은 다른 생각을 항상 밀어내기 때문이다. 자네 마음이 남에게 봉사
하려는 의욕에 가득 차 있으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두려움을 품을
수가 없다."
이 글을 읽고 다시 생각해 봅니다. 나뭇가지에 걸린 흰 뱀을 보고 도망치는 것
대신에 함께 간 어머니가 혹시 뱀에게 물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면 어땠을
까를요.
그랬다면 아마도 그 뱀을 어떻게든 멀리 내쫓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
에 따라 어떤 대응을 했을 겁니다.
건전한 생각과 불건전한 생각을 동시에 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그 순간 단 하나의 생각만이 우리를 지배한다면, 그 선택은 문제를 마주
하는 우리의 몫입니다.
이때 선택의 기준은 저자가 말한 대로 "남을 위해 무엇이든 해 보라", 즉 "저 뱀
이 우리 엄마를 다치게 할 수도 있을 거야"라는 이타심으로 두려움을 마주하면
누구나 용기를 낼 수 있을 겁니다.
두려움은 감정입니다. 감정은 실체가 아니라 허상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실체라고 여기고 두려움에 굴복해 버
립니다.
그러나 두려움이 허상임을 알아차린 우리는 용기를 내서 두려움에 맞설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이제까지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흰 뱀’이 사실은 별것 아닌 ‘화장
지’였음을 알아차릴 수 있으니까요.
결국 두려움은 마음의 장난 때문에 생겨난 허상일 뿐입니다. 나뭇가지에 걸린
것을 두고 무서운 ‘뱀’일 거라고 마음이 장난을 친 겁니다.
그러나 이 장난에 휘말리게 되면 극심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결국 그 두려움에
서 도망치게 됩니다.
그러나 도망친다고 해도 두려움 자체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내 마음속에 이미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두려움이 허상이라는 것과 두려움을 이기는 최고의 방법을 알게 됐
습니다.
이 깨달음은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겠다는 이타심이 두려움과 정면승부를 하겠
다는 용기로 나타나 결국 나와 너 모두를 살리는 힘으로 작용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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