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번번이 범죄자로 낙인, 사망까지 알콜 중독, 정신장애 노숙인 대책 시급
최근 노숙인 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거리의 노숙인들은 외환위기 이후 줄어드는 추세였으나 올 해 들어 특히 2~30대의 ‘젊은 노숙인’들이 눈에 띄게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숙인 무료급식 등 관련분야 활동을 하고 있는 자원봉사 단체들은 “최근 ‘청춘 노숙인’이 늘어나는 것은 고물가, 일자리감소, 비정규직 문제 등으로 심각한 생계곤란을 겪는 ‘젊은 층’이 증가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특히 최근 ‘청춘 노숙’의 유형은 기존의 ‘실직형 노숙’과는 확연히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어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중에서도 10여 년이 넘도록 노숙생활을 한 아버지의 대를 이어 노숙인이 된 ‘세습형 노숙인’이나 이혼ㆍ가정폭력 등으로 인한 ‘가족해체형 노숙인’, 삶의 의지가 없는 ‘무기력 노숙인’등이 속출하고 있어 이를 둘러싼 여러 가지 사회문제들이 불거지고 있다.
노숙, 아버지께 물려받아..
얼마 전 노숙인들에게 무료 급식을 제공하는 전국 노숙인 봉사 단체에서 노숙인 현황을 조사한 결과 서울경기를 중심으로 신규 노숙인이 대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서울 영등포역 주변지역의 노숙인은 지난해 5월 600여명에서 올해 5월 1050여명으로 2배가량 늘어났다.
기존 노숙인 밀집 지역이었던 서울역ㆍ용산역 부근 노숙인은 각각 1000여명, 300여명으로 지난해와 비슷했다. 하지만 봉사단체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서울시에서 서울역ㆍ용산역 거리급식 금지 정책을 시행한 이후 상당수의 노숙인들이 영등포역 주변으로 이동한 점을 감안하면 서울ㆍ용산역 노숙인들도 대폭 증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숙인이 전혀 없던 경기도 몇 개 도시에서도 1년 사이 노숙인이 늘어나는 추세며, 부산역 노숙인도 25%가량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증가된 노숙인 비율 중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 노숙인이 된 사례가 몇 년 사이 점진적으로 증가했다는 것.
이에 노숙인 쉼터를 운영하고 있는 한 교회관계자는 “최근 증가하는 젊은 노숙인들의 공통점은 원래부터 불우한 가정에서 자랐다는 것”이라며 “편부편모가정, 가난, 학업중단, 부모의 폭행 등 복합적인 요소가 원인이 돼 한창 나이에 거리생활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최근 유난히 젊은 노숙인이 증가하는 원인이 사회구조와 맞물려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아동학대발생률, 실직률, 이혼률, 청소년범죄률 등이 젊은 노숙인 양산과 밀접하게 얽혀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관계자는 2~30대 노숙인 중 생활에 대한 비관으로 알콜 중독에 빠져 ‘아무것도 할 의지가 없는’ 유형도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런 경우 노숙인 쉼터나 프로그램 등에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전무해 방치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노숙인, 범죄의 희생양
지난 5월 경찰과 119구급대가 의사소통 차질을 빚는 동안 동맥이 끊어진 노숙자가 과다출혈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해 논란이 됐었다.
서울 광진 경찰서와 광진 소방서에 따르면 5월 29일 오후 7시 경 신원불명의 30대 노숙인이 한 슈퍼마켓에서 소주병을 들고 도망쳤다. 이를 목격해 쫒아간 슈퍼마켓 주인은 소주병을 빼앗아 노숙인에게 던졌고 소주병이 깨지면서 파편이 튀어 노숙인의 종아리 대동맥 부위가 찢어졌다.
노숙인이 상당량의 피를 흘리자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했고, 119구급대도 신고접수를 받았다. 하지만 현장에 먼저 도착한 경찰은 구급대를 기다리느라 피해자를 10여분간 방치, 결국 노숙인은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또 지난 5월 말에는 노숙인들의 명의를 도용해 대포폰, 대포통장을 개설해 6억 5천만원을 챙긴 일당이 구속된 사건이 있었다. 이들은 서울역, 대전역 등지에서 노숙인을 모집, 이들을 관리하며 대출서류를 위조하는 등 점조직 단위로 사기행각을 벌여온 것으로 밝혀졌다.
잘 알려진 사건 중 지난 2월의 숭례문 방화사건 당시에도 한 노숙인이 최초 용의자로 지목돼 경찰수사의 대상이 됐었다. 하지만 실제 범인은 80대 채모씨로 밝혀졌다.
이밖에도 노숙인들이 근거도 없이 범죄 혐의자로 체포되거나 누명을 쓰는 경우가 셀 수도 없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노숙인 재사회화를 돕는 사회 단체의 한 관계자는 “노숙인의 외모가 혐오스럽고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범죄자로 낙인찍히거나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하지만 오히려 노숙인을 상대로 사기 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이들은 범죄에 얽혀 피해를 당한 후에도 손해배상 등 권리를 보장받을 수가 없어 오히려 그 문제가 더 심각하다. 이들이 범죄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국가 인권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노숙인들은 오히려 카드, 대출사기, 장기매매, 인신매매, 폭행, 성폭력 등의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 관계자도 “노숙인 범죄가 일반인의 범죄비율보다 결코 높지 않다”며 “오히려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신고를 당하거나 범죄에 악용되는 등 많은 피해를 입고 있다”고 말했다.
지원시설, 턱없이 부족
노숙인 시설 관련 전문가들은 모두 “지원 시설개선, 예산, 담당 인원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며 성토했다.
005년부터 노숙인도 사회복지법 개정에 따라 법률적 근거를 갖는 사회복지 지원대상이 됐다. 그러나 최초 중앙정부에서 맡아온 노숙인 지원정책이 현재 지자체로 옮겨오면서 서울시에서만 관련 정책 예산의 반을 지원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노숙인 쉼터 관계자는 “현재 정책의 기본적인 틀만 갖춰져 있는 상태”라며 “지원내용도 쉼터, 일자리 갖기, 특별자활, 일시적인 잠자리 제공 등에 그치고 있다”고 털어놨다.
관계자는 특히 알콜문제나 정신장애를 겪는 노숙인들을 파악해 입소시설로 안내하는 ‘아웃리치 팀’ 운영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노숙인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힘들어, 도움이 꼭 필요하지만 유독 쉼터로 오는 것을 꺼린다는 것이다.
이어 “아웃리치 팀의 인원이 턱없이 부족해 알콜중독, 정신장애 노숙인 파악조차 힘들다”며 “인원이 있어도 강제로 쉼터로 끌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난감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노숙인ㆍ부랑인ㆍ홈리스 정책은 모두 별개의 관할 하에 운영되고 있다.
이에 복지부 관계자는 “노숙인 정책은 지자체로 이관됐고, 부랑인은 중앙정부가 관할하고, 홈리스 정책은 국토해양부와도 협의해야 해 쉽지 않다”라는 대답만 내놓고 있다.
때문에 현재 노숙인 정책과 부랑인 정책을 고려하고, 당장 쪽방 등에 거주하며 일거리가 없으면 거리로 나오는 잠재적 노숙인까지 아우르는 ‘홈리스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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