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활자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어라.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어라.
이 황혼도 저 돌벽 아래 잡초도
담장의 푸른 페인트 빛도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그대의 정의도 우리들의 섬세(纖細)도
행동이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郊外)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어라.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김수영 - 사령
너무도 미안해서 진보신당의 집회 부상자 모금에 아껴둔 술값 10만원을 내고
돌아오는 길에, 감히 저 시가 떠올랐다. 정말이지 용기를내서, 생각한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사는대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게 두렵다.
사실 나는 정치활동에 큰 관심을 가진 행동주의자도 아니고
정책 하나부터 열까지 무조건 반대할 생각도 없다.
혼란을 틈 타 국민들을 선동해서 사리사욕을 챙기려는 불순분자가
절대 없다고 장담하지도 안는다. 이 집회를 통해 모든 것을 뒤집어
엎어버려야만 한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현실적인 해결책을 갈구하는 평범한 중도주의자 지망생에 다름없다.
다만 내가 정부와 그에 빌붙은 무리들을 증오하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언제나 그 치들은 자신들의 도덕성보다 더 높은 기준을 국민들에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못난 도덕성은 조금도 반성할 생각이 없으면서,
국민들에게는 법을 어기면 호되게 처벌받아야 한다며 준엄하게 꾸짖는다.
동생의 성매매의혹을 압력을 넣어 숨기고 아들이 병명도 밝히지 않는 이유로
군면제를 받은 경찰청장이 이 나라의 법과 치안을 수호하겠다며 설치고
정부와 조중동은 그를 두둔한다. 한심함에도 정도가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제까지 말할 것도 없다. 그야말로 내유외강의 결정체다.
정작 자기 자신은 집안 재산만 축내면서, 매일 매일 술에 절어 집 돌아와
자식과 아내를 때리며 똑바로 살라고 고함치는 한심한 가장과 다를 바가 없다.
정론직필, 우국지사를 자처하며 나라를 살리자고 외치는 조중동의 입에서
구린내가 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 가증스러움이 너무도 싫다. 또한 그런 협잡꾼들에게 속는 것은 굴욕이다.
반면 똑같은 정론이라도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말에는 힘이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입 바른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다. 하지만 행동으로
도덕성을 증명 받은 자의 말에서는 빛이 난다. 믿고 따르게 된다.
마하트마 간디가 그렇고 백범 김구가 그렇다. 올바름을 행동으로 증명한
자의 입에서는 유려한 달변이나 고상한 철학 따위가 없어도 강철 같은
설득력이 생기기 마련이다. 또한 그것이야말로 부끄럽지 않은 인생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명박을 '독재자'라고 하는데 사실 그건 좀 어폐가 있는
평가다. 왜냐하면 어떤 독재자든 최소한 초기에는 자신의 광적인 카리스마로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그랬고 김일성이 그랬고
스탈린이 그랬고 히틀러가 그랬고 이디 아민이 그랬고 도조 히데키가 그랬고
피노체트가 그랬고 차우세스쿠가 그랬다. 솔직히 시작부터 지지율 하락 기록
기네스북에 기록될 이명박에겐 독재자의 자격조차 없다. 뒤틀린 신념조차 없다.
하지만 그런 그를 '친탈자'라고 부를 수는 없는 이유는, 결국 전과 14범을
대통령의 자리에 앉힌 사람들이 바로 국민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우리의
도덕적 안이함을 심판받고 있다. 그러니 이 고통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행동하지 않았음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다시는 반복해선 안된다.
우리가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투표를 하는 그 순간 뿐이다.
그 손쉬운 행동마저 포기한다면, 머지 않아 권력자는 그것까지 빼앗아 갈 것이다.
1987년 이전처럼.
원문 출처, BLINK TALK 네이버 블로그
작가 빌리경의 블로그를 읽다가 가져왔습니다.
우리들도 뼈저린 반성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