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신문 / 2005년 10월 11일자
이용훈 대법원장 취임 후 대법원은 1972년에서 1987년 사이의 시국`공안사건 판결문을 수집하라는 공문을 전국 주요 법원에 보냈다. 사법부의 과거사를 정리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대법원에 도착한 판결문은 3,600개에 달한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그 판결문을 직접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사법부의 과거사 정리에 대한 솔선수범의 자세 그 자체만으로도 이용훈 대법원장이 달리 보인다.
취임직후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재심 기회 확대에 대해 매우 보수적인 태도를 보인 이원장의 발언이 일반 시민의 처지에서는 못내 아쉽지만,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사법부의 과거에 대해 ‘가슴깊이 반성, 사죄한다’고 말한 그 용기와 성찰에 대해서 나는 이용훈 대법원장에게 경의를 표한다. 과거에 대한 반성은 ‘무너진 정의로 인해 흔들렸던 사법권’이 무고한 개인의 가슴에 심어놓은 한과 억울함을 보듬겠다는 의미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용훈 대법원장이 읽게 될 3,600개 판결문에 포함돼 있을 것이 확실한 공안사건 중 ‘진도간첩단 행방불명자 가족사건’이 있다. 그 사건에 김정인이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1981년에 간첩혐의로 구속되어 1985년에 사형당한 사람이다. 김정인은 진도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로 고향에서 농업과 해태양식업을 하던 순박한 40대 초반의 남자였다. 중앙정보부가 밝혀내고 사법부가 추인한 그의 사형죄는 이렇다.
한국전쟁 때 행방불명되었다가 남파된 간첩 외삼촌을 따라 세차례 월북했고 그 이후 17년간 국가기밀을 수집, 보고하는 간첩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 김정인은 1964년 5월에 갑자기 나타난 외삼촌에게 납치되다시피 북에 끌려갔다가 3일만에 진도로 돌아온 사실이 한번 있지만, 나머지는 모두 고문에 못이겨 허위로 자백한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그와 함께 구속되었던 지인과 친척4명은 중정에서 60일동안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고문을 받았다.
김정인의 표현을 빌자면 “죽다가 살아난” 수준이었다. 물론 재판과정에서 그의 고문 주장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얼마나 고문의 공포가 심했는지 변호사가 김정인을 처음 접견해서 자신의 역할과 변호를 맡게된 경위를 자세하게 설명했음에도 변호인을 수사관으로 계속 의심하며 중정에서 자백한 간첩혐의를 녹음기처럼 반복했단다. 하지만 당시 김정인의 변호사는 항소이유서에서 그 살인적인 고문을 ‘몹시 참기 어려운 곤욕’이라거나 ‘수사기관에서 엄문을 당한’ 정도로밖에 표현하지 못했다. 그의 유죄 확정 당시 증거요지는 검찰에서의 피의자 신문조서와 법정에서의 일부 진술이었다. 물적 증거는 압수된 라디오 1대와 간첩 외삼촌에게서 받았다는 금반지 3돈이 전부였는데, 라디오는 본래 김정인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고 금반지는 김정인이 그의 처에게 사주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검사는 논고문에서 김정인이 공소장에 기재된 사실을 모두 백 퍼센트 자백했음에도 한번 시인했던 사실을 합리적 근거 없이 부인하고 한번 부인했던 사실도 검찰관이 추궁하면 다시 부인하는 ‘촌극을 자행한다’고 몰아붙였고, 그의 다급한 절규를 촌극으로 규정한 판사들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대법원 사형 확정 후 이루어진 두 차례의 재심 청구도 모두 기각되었는데, 진짜 촌극은 두 번째 재심 기각결정문이 그의 사형집행 1년 후 교도소로 배달되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김정인 사건을 전하는 민가협 총무 송소연의 목소리는 아득하다. “마지막 호소문을 읽다가, 그냥 울고 말았어요. 변호인도 없이 자신이 쓴 글이죠. 맞춤법도 맞지 않고, 문장 구성도 채 되지 않은 호소문. 자기변론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그 분. 지금 가족이 어디 살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그 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 분… 다시 그 시대로 갈 수 있다면!”
그 호소문, 김정인의 2차 재심청구서는 이렇게 끝난다.
“아무런 증거도 없는 것을 가지고 채고형까지는 너무나 가하지 않읍니까. 넓으신 마음으로 이 못난 소인을 한번 살려주세요. 판사님 형법에 의한 벌만 주싶시요. 판사님… 1984년 11월15일 피고인 김정인.” 하지만 이듬해인 1985년 김정인은 47세의 나이에 사형을 당했고 그의 이름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송총무의 말처럼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명예는 회복해주어야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꼭 그렇게 해야 한다. 아마도 그런 사연들 때문에 이용훈 대법원장이 사법부의 과거사 정리를 시작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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